애플렉이 만 8세가 되던 해, 2블럭 거리에 떨어져 있던 지역으로 이동을 했고 2살 연상의 친구 맷 데이먼과 만났다.[58] 그들의 어머니는 모두 교육에 종사하는 친분이 있던 지인들로 서로의 아이들에게 소개를 시키며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격려했고, 두 사람은 극도로 가까워지며 친한 친구로 발전하였다.[59][60]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 린지 앤 래틴 스쿨이라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61][62] 애플렉은 그의 동생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시절 연극 교사 게리 스페카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63][64][65] 애플렉과 데이먼은 학년은 달랐지만, 연기라는 "동일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장래에 배우가 될 자신의 계획을 함께 논의를 하며 점심 시간을 보냈다.[58][66] 그들은 여름 방학 동안 건설 현장 노동자 및 극장 안내인으로 함께 일했고,[67][68][69] 뉴욕에서 오디션을 보기 위해 공동으로 은행 계좌를 만들어 열차 및 항공사 티켓 비용을 절약해 이동했다.[66][70] 데이먼이 졸업을 하고, 근처의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들은 가까이 남아,[71][72] 그들의 초기 경력의 몇 년 동안에는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함께 살았다.[73][74] 또한 두 사람은 10촌쯤 되는 먼 친척정도이며, 같은 뉴잉글랜드계로 알려져 있다.[61][75][76]
애플렉은 높은 SAT 점수를 가지고 있었지만,[24][36] 출석일수가 불분명한 고등학교 학생이었다.[24][40][77] 그는 합격 통보를 받은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고, 대신에 여자친구를 따라 버몬트 대학교 스페인어학과에 갔다.[36] 그는 자신의 엉덩이 골절을 입은 몇 달 후, 학점과는 무관하게 학교를 중퇴하였다.[78] 애플렉은 만 18세때,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해,[53] 옥시덴털 대학교에 입학해 반년간 중동학을 공부하였다.[61][79][80][81][82]
경력
1981-1997년: 아역 배우와 굿 윌 헌팅
애플렉은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아역으로 활동하였으며,[83] 그는 첫 역할로 만 7세때 가족의 친구가 감독한 지역의 독립 영화 《더 다크 앤드 오브 어 스트릿》(1981)에 출연하였다.[84] 그가 아역 배우로서 큰 성과를 보인 것은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 시리즈 《The Voyage of the Mimi》(1984) 와 《The Second Voyage of the Mimi》 (1988)로 6학년 과정의 과학 수업으로 제작되었다. 애플렉은 매사추세츠주와 멕시코에서의 두 지역에서 만 8세부터 15세때까지 Mimi에 주기적으로 출연했다.[83] 10대 시절, 애플렉은 ABC의 《ABC 애프터스쿨 스페셜》(1986),[85] 텔레비전 영화 《핸즈 오브 어 스트랜저》(1987)과[83] 1989년에는 버거킹 광고에 출연했다.[65]
이후 고등학교 시절, 애플렉은 연기 일을 찾아 뉴욕으로 잠시 이동했다.[83] 나중에,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옥시덴털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중, 애플렉은 《나는 나의 레즈비언 아내를 죽여서 불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월트 디즈니와 세 편의 영화를 협상중이다》라는 긴 제목의 단편 영화를 감독했다.[30][86] 배우로서, 그는 다음 역할을 따내기 위해 계속해서 지역을 돌아다녔다.[83] 그는 패트릭 더피의 아들을 연기한 텔레비전 영화 《다니엘 스틸:위대한 대디》(1991), 영화 《뱀파이어 해결사》(1992)와 반유대주의의 조연 역할을 한 《스쿨 타이》(1992)에 출연했다.[87] 그는 고등학생 쿼터백을 연기한 NBC 텔레비전 시리즈 《어게인스트 더 그래인》(1993)과 스테로이드를 남용한 고등학고 축구선수를 연기한 《인생 이야기: 가족의 위기》(1994)에 출연했다. 이 기간동안 애플렉이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으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컬트 클래식 《멍하고 혼돈스러운》으로 이 영화에서 불량학생으로 출연하였다.[88]
애플렉의 첫 주연 영화인 캠퍼스 드라마 《글로리 데이즈》(1995)에서 뚜렷한 목적이 없는 예술학생을 연기했다. 그는 협박하는 연기를 한 코미디 《몰래츠》(1995)에서[52] 각본가 겸 감독인 케빈 스미스와 촬영하는 동안 친구가 되었고, 스미스의 로맨틱 코미디 《체이싱 아미》(1997)에서 애플렉은 주연을 맡았다.[83][89] 이 영화는 배우에 있어 획기적인 순간을 가져다 주였다.[52] 1997년에는 또한, 그는 성년 드라마 《다크니스》에 출연하였다.[90][91]
1997년, 애플렉이 데이먼과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한 《굿 윌 헌팅》의 성공은 그의 경력에 가장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 각본의 초안은 1992년 데이먼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극작 수업에 대한 40 페이지의 극본 과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수업에 앞서 그와 함께 장면의 행동에 대한 역할을 애플렉에 요청하였고, 데이먼은 나중에 애플렉의 로스앤젤레스 아파트로 이동하여 그들은 본격적으로 각본 작업을 시작했다.[58] 이 영화는 대부분 그들이 즉흥적인 과정으로 쓴 것으로[68] 촬영지는 그들의 케임브리지의 동네와 평소 그들의 경험에서 나왔다.[41][43][92] 그들의 각본은 1994년 캐슬 록 엔터테인먼트에 팔렸고, 그 때 애플렉은 만 22세였다. 제작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롭 라이너, 윌리엄 골드먼과 테런스 맬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93] 다음에는 적절한 감독을 찾는 것에 대한 캐슬 록과의 오랜 분쟁 끝에, 미라맥스에서 애플렉과 데이먼의 각본을 구입하였다.[41] 영화가 최종적으로 제작에 들어가기전 거스 밴 샌트가 감독을 맡는 것이 정해졌고, 이 두 친구는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가 데이먼과 애플렉의 공연자로 로빈 윌리엄스가 합류하였다.[68] 공개가 된 후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애플렉과 데이먼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였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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